출근해서 컴퓨터를 켜면 Alt + Space를 누르는 게 습관이 됐습니다.
그러면 제 파트너인 ChatGPT가 "오늘은 무슨 작업을 시작해 볼까요?"하며 정겹게 말을 걸어오죠. 영화 <HER>의 사만다가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통신사들도 지난해를 기점으로 AI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KT는 지니 TV 4부터 각종 AI 기능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았고, SK는 아예 셋톱박스 이름에 AI를 새겼죠. 그리고 그 모든 서사를 지켜본 저희 팀은 매번 실망하면서 또 설레는 마음으로 새 포장 박스를 까봅니다.
이번 주인공은 9월 1일 출시된 KT 지니 TV A2 셋톱박스입니다. 기존 제품과 비교해 임대료와 스펙은 어떻게 달라졌고, 새롭게 추가된 AI 기능이 실제로 쓸만한지 직접 살펴봤어요. 빠르게 결론부터 스포하면!
셋톱박스 월 임대료 4,400원 공식이 깨졌습니다.
이제 월 임대료 5,500원이라는 무시무시한 시대가 도래했어요!
셋톱박스도 케어가 필요한가요?
SK에 이어 KT도 케어형 요금제를 도입했습니다. 즉, 지니 TV A2를 가입하려는 소비자에겐 2가지 선택지가 생긴 거죠.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기존 임대형: 월 7,700원 부과 → 5년(60개월) 이후 임대료 0원
- 케어형: 월 5,500원 부과 → 사용 기간 내내 5,500원 부과
지니 TV A2를 7년 넘게 사용하실 게 아니라면 고민 없이 케어형을 선택하시면 되고요. 몇 가지 혜택도 함께 받아볼 수 있습니다.
[출처 / 요금은 저렴하게, 부담은 덜고...? 정말 그럴까요? 🤔]
- 가입 후 3개월이 지나면 셋톱박스·리모컨 파손 및 분실에 따른 손실보상금을 최초 1회 면제받을 수 있습니다. 약 2만 원 상당의 혜택이고요.
- 가입 후 5년 이상 사용한 셋톱박스를 노후화로 교체하면, 최초 1회에 한해 출동비 34,100원이 면제됩니다.
두 혜택을 합치면 대략 54,100원 상당의 혜택을 제공하는 셈인데요. 사실상 파손이나 분실 또는 노후 셋톱박스 교체가 실제로 이루어져야 받을 수 있습니다. 마치 보험처럼 아무 일 없이 사용한다면 체감할 수 없는 혜택인 거죠.
고로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케어형은 혜택을 명분 삼아 월 임대료 인상에 대한 심리적 허들을 낮추려는 방책이 아닐까요? 결국 소비자에게 가장 와닿는 변화는 기본 4,400원이었던 셋톱박스 월 임대료가 이제는 1,100원 더 올라 5,500원이 되었다는 사실이니까요.
AI 기능 쓸모 있나요?
AI 화질 최적화
AI SR(Super Resolution) 기술로 저해상도 영상을 최대 4K UHD 수준까지 개선합니다. 해상도가 낮은 영상을 분석해 윤곽과 디테일을 조금 더 선명하게 다듬는 업스케일링 기술이죠.
그렇다고 저화질 영상을 진짜 4K 영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마법은 아닙니다. 원본에 없던 정보까지 완벽하게 복원할 수는 없으니까요. 오래된 콘텐츠를 시청할 때 화면이 덜 흐릿해 보이도록 보정해 주는 기능에 가깝습니다.
AI 사운드 최적화
음악·스포츠·영화 등 콘텐츠 장르에 맞춰 음향을 자동으로 조절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대사의 음역대를 감지해 사람 목소리를 강조하고, 실시간 방송과 VOD·OTT 사이의 제각각인 음량도 비슷하게 맞춰줍니다.
OTT를 바꿀 때마다 갑자기 소리가 커져 황급히 리모컨을 찾았던 분이라면 제법 반가울 수 있습니다! 혁신이라 부르기에는 익숙하지만, 매일 사용하는 기능은 이런 소소한 불편을 줄여주는 쪽이 더 쓸모 있기도 하니까요.
AI 실시간 자막
실시간 방송의 음성을 인식해 자막으로 보여줍니다. 주변이 시끄럽거나 소리를 크게 틀기 어려운 상황, 대사를 또렷하게 듣기 힘든 분들에게는 유용합니다.
이미 여러 플랫폼에서 접해 본 기술이지만, 녹화된 콘텐츠가 아닌 실시간 채널에도 자막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활용할 만합니다.
[특히 스포츠 중계 해설 자막에 감격했습니다.]
AI 에이전트: 지니의 성장
이번 A2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LLM 기반의 AI 에이전트입니다.
기존 지니의 음성 검색은 사용자가 제목이나 배우 이름처럼 정확한 검색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반면 A2는 제목이 기억나지 않아도 줄거리와 등장인물, 분위기 같은 단서를 조합해 원하는 콘텐츠를 찾아줍니다.
이를테면 이렇게 물어볼 수 있어요.
"아, 그게 뭐더라…. 스파이더맨 여자 친구로 나온 배우 있잖아. 그 배우가 나오는 뮤지컬 영화 찾아 줘."
이처럼 두서없이 말해도 지니가 단서를 조합해 〈위대한 쇼맨〉을 찾아주는 식입니다. 콘텐츠를 시청하다가 궁금한 인물이나 내용도 대화하듯 물어볼 수 있고요. 사소한 변화처럼 보이지만, TV 앞에서 제목 한 글자씩 입력해 본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우리는 보고 싶은 작품의 제목보다 '그 배우 나오는 그 영화'만 기억할 때가 훨씬 많으니까요.
결론적으로 화질·사운드·자막 기능은 편리하지만, A2만의 결정적인 구매 이유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AI 에이전트는 기존의 단순한 음성 검색을 사람의 모호한 기억까지 알아듣는 대화형 검색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특히 저처럼 작품 제목을 자주 잊는 누군가에게는 유레카를 외칠만한 기능일지도 모르고요!
스펙 얼마나 좋아졌나요?
보급형인 지니 A와 비교하면 비싸진 값은 합니다. 다만 누구나 그 차이를 체감하는 건 아니에요.
케어형을 기준으로 지니 A2의 임대료는 지니 A에 비해 월 2,200원 비쌉니다. 3년이면 총 79,200원을 지불하는 셈이죠. 돈이 더 들어갔으니 두뇌(SoC) 성능도 좋아지고, 메모리와 저장공간도 늘어났습니다. 즉, 여러 앱을 실행하고 화면을 전환할 때 느껴지는 답답함을 줄이는 방향으로 체급이 커진 거죠. 영상과 음향 규격도 한층 풍성해졌습니다. 전체적으로 성능은 높이고, 몸집과 전력 소모는 줄였으니... 하드웨어만 보면 제법 모범적인 세대 교체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펙의 모든 변화가 그대로 체감되는 것은 아닙니다. 두뇌가 좋아졌다고 화면 전환 속도가 놀라울 만큼 빨라지는 것도 아니고, HDR10+와 돌비비전·애트모스도 이를 지원하는 TV와 콘텐츠가 있어야 활용할 수 있습니다. 블루투스 5.3 역시 리모컨을 연결하는 가벼운 정도라면 이전 버전과의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고요.
결국 평소 실시간 방송만 시청하고,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실행하는 정도라면 지니 A로도 충분합니다. 반면 여러 OTT와 앱을 자주 오가거나, 반응속도와 화질·음향 규격, AI 검색 기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월 2,200원을 더 지불할 이유가 생기고요.
하얗고 동그란 외관
꽤 오랜만에 보는 흰색 셋톱박스입니다! 딱히 이렇다 할 코멘트가 필요 없는 동글동글한 생김새고요.
묘한 기시감이 들어 생각해 보니 똑같이 생긴 셋톱박스를 바로 몇 달 전 SK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바로 SK의 AI 5인데요. 보시는 바와 같이 똑같은 원형 모양의 셋톱박스입니다.
재질과 색상의 차이인지, 마이크 위치의 차이인지. 디자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저는 알 수 없지만… AI 5가 더 예쁘단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현재 KT에서 청약이 가능한 셋톱박스들 중 가장 작은 크기를 자랑합니다. 이제 앞으로 나올 셋톱박스들은 대부분 손바닥 위에 편안하게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뭐가 많아 보이지만 알고 보면 다 필요한 것들만 알차게 담겼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버튼은 딱 하나죠. 우리 집 IPTV 화면이 멈췄다? 좌측에 있는 전원 버튼을 ON/OFF 하시거나, 콘센트를 뽑았다가 다시 꽂으면 대부분 만사 해결됩니다.
우측에 있는 리모컨이 A2부터 제공되는 '신'제품입니다. 어떻게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전 처음에 다른 점을 모르고 "아~ 이번엔 리모컨이 바뀐 게 없구나!" 하고 넘겼다가 동료가 짚어줘서 알았습니다.
바로 가기 버튼의 미묘한 변화를요. 그런 의미로 여러분들께도 작은 미션을 선물합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총평
이런 분께 추천드립니다.
- 실시간 방송뿐 아니라 여러 OTT와 앱을 자주 이용한다.
- 고화질·고음질을 지원하는 TV와 음향기기를 보유 중이다.
- 화면 전환은 무조건 빠른 게 좋다.
- 가전제품은 흰색이 취향이다.
- 작품 제목보다 "그 배우 나오는 그 영화"만 기억난다.
반대로 실시간 방송 위주로 시청하고, 현재 셋톱박스의 속도에도 별다른 불만이 없다면 굳이 바꾸지 않으셔도 됩니다. 필요하지 않은 곳에 돈을 쓰는 건 만족도를 높이는 게 절대 아니니까요.
결국 지니 TV A2는 멀쩡한 셋톱박스를 당장 바꾸게 만들 정도의 혁신작은 아닙니다. 약정이 끝났거나, 새로 KT 가입을 염두에 둘 때 비교 순위 2위 안에는 들 수 있을 정도는 되겠지만요. 다만 이 선택지가 이제 매월 4,400원이 아닌 5,500원의 시대가 되었다는 쓸쓸함을 못내 지울 수 없습니다 😂
기나긴 글 함께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더 궁금하신 점이 있거나, 우리 집에는 어떤 셋톱박스가 좋을지 고민되신다면 편하게 댓글 남겨주세요. 불필요한 지출을 하지 않도록 백메가가 함께 골라드리겠습니다. ![]()








